2006년 북경으로의 3학년수학여행...

2006.5.18

드디어 오늘 수학여행을 간다! 그동안 수학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중간고사 치르는 내내 즐거운 마음고생을 했었다. 시험이 끝난 후 시험의 씁쓸함과 여행에 대한 설렘과 뜻 모를 두려움을 느끼며 수학여행 준비를 했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중국을 간다.

이번 수학여행은 수학과 3학년생을 필두로 여타 다른 학년 몇 명, 대학원생, 곽민규 교수님, 박대희 교수님과 김순배 조교님이 함께한다. 여행 당일인 5월 18일 광주공항으로 12시까지 모이기로 했다. 나는 은희, 수연이와 함께 시내버스를 이용해 광주공항에 도착했다. 와보니 우리가 일찍 온 것 같아서 공항 안에 있는 은행에서 중국 돈 인민폐로 환전을 했다. 환전하고 나니 곽민규 교수님도 오시고 다른 사람들도 슬슬 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모이자 중국에서 필요한 물이며 부식들을 챙기고 여권도 나눠줬다. 곽민규 교수님께서는 이번 여행에 대한 안전과 즐겁게 보내자는 좋음 말씀을 해주셨다. 또 여행사 사장님께서는 북경에 초행길인 우리에게 여행수속에 필요한 것들과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두 분의 말씀을 끝으로 우리 모두 함께하는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붙여야 할 짐은 붙이고 갖고 갈 짐들은 챙겨서 이제 줄을 서서 출국을 위해서 몸과 짐을 검사하고 나서 출국심사를 한 후 태어나서 처음 만든 여권에 쾅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내 생애 첫 해외여행 및 관광이 시작이 됐다. 계단을 내러가서 밖으로 걸어나가니 우릴 중국으로 데려다줄 비행기가 있었다. 처음 보는 비행기에 신이 난 나와 친구들은 비행기 앞에서 찰칵 사진을 찍었다. 비행기에 올라서니 승무원 언니들이 아름다운 미소와 상냥한 인사로 우리를 맞이했다. 처음 타 보는 비행기 안은 근거리 비행인지 아니면 승객이 소규모인지 생각보다 작았다. 짐을 넣고 자리에 앉아 여기저기 쳐다보는데 오빠들은 승무원 언니들이 예쁘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비행기 이륙으로 인해 안전벨트를 하고 긴장하고 앉아있는데 방송이 나왔다. 방송이 끝나자 비행기가 슬슬 돌더니 앞으로 천천히 달리더니 갑자기 세게 달리면서 공중으로 붕 뜨는 그 느낌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아~악 하고 지르고 말았다. 너무 놀랐지만 생소한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비행기가 상공에서 안정권에 들어서자 환한 웃음을 머금은 승무원 언니들이 기내식을 가지고 왔다.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한 승무원 언니가 한국말을 정말 잘해 놀랐다. 생김새도 마치 한국인 같았다. 기내식은 뭔가 빠진 느낌을 주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다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비행기 타는 내내 이것저것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았다. 내 좌석이 창가는 아니지만 최대한 목을 길게 빼 창밖을 보니 하얀 구름이 보였다. 중국 거의 도착 했을 즘 창밖을 보니 중국 하늘은 한국과 비교도 안될 만큼 공기가 좋지 않아 보였다. 온통 하늘이 회색이었다. 특히 우리가 북경까지 가는데 심양을 경유를 하는데 이 심양이라는 도시는 중국 5대 도시 중 하나며, 공업도시이기 때문에 유난히 하늘이 맑지 못하다. 창밖을 보고 있으니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착륙도 처음인지라 또 긴장했다. 이륙 보다는 훨씬 안전한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미소의 승무원 언니와 오빠들의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에 내려서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됐는데 환한 웃음으로 인사 한번 해보려니 원 아저씨도 참 무서운 눈초리를 하고 계셨다. 심양공항을 눈으로 휘 둘러보니 온통 한자, 빨간색, 뭔가 다른 공기와 초록색 제복을 입은 공안들이 보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줄을 서서 나가니 이 넓은 중국 땅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경유하는 심양에서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 언니였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우리가 탈 버스에 짐을 싣고 심양공항 밖을 보니 모든 것이 다 크고 넓었다. 확실히 첫인상은 강렬했다. 버스에 올라 가이드 언니가 본인 소개와 중국이라는 나라를 어마어마한 숫자로 설명하고 심양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어 북릉 서탑거리(북릉공원)로 향했다. 심양 북쪽에 위치한 북릉 서탑거리는 청나라 태종 부부의 능이다. 입구부터 매우 크고 웅장했다. 입구 앞에는 꽃으로 된 화단이 있어 모두들 꽃 앞에서 자세를 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눈앞에는 매우 넓은 공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은 잘 닦여 있고 나무들은 줄을 맞춰 반듯이 서있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정없이 부는 바람에 춤을 추는 머리카락 때문에 사진 찍을 때마다 정신이 없었다. 이 넓은 공원을 한참 걸어가니 문이 나왔고 지나가니 다리가 보였다. 다리 밑으로는 큰 호수가 있었다. 실로 어마한 크기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다리를 지나 우린 안내문 앞에서 가이드 언니의 설명을 듣고 우리가 봐야할 순서를 기억했다. 가이드 언니를 따라다니며 설명도 듣고 사진도 찍었다. 능 외곽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황제의 능의 봉분은 콘크리트로 덮여져 있었고, 특이하게도 가운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능묘 앞에는 아름다운 황색 유리 기와로 된 건물이 있었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가로막힌 벽 앞에 문 같이 생긴 것이 있는데 밑에 지하가 있다고 한다. 들어가는 방법은 모른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북릉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청을 실제로 일어나게 한 인물이 묻혀 있는 무덤에 다녀온 것이 놀랍기만 하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저 내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역사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 간단히 심양을 둘러보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공항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중국에서의 첫 맛은 생각과 달리 느끼하지 않고 대신 약간 기름지긴 했지만 맛있고 넉넉하며 즐거운 식사였다. 그래도 중국의 맛이 맞지 않는 이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를 먹었다. 식사 후 포만감을 가득 안고 북경으로 가기 위해 심양공항으로 향했고 공항에서 가이드 언니와는 아쉽게도 헤어졌다.

심양공항에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을 붙이고 심사를 받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 바람과 번개를 동반한 날씨 때문에 비행기는 연착이 되고 말았다. 처음엔 다들 이 기다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니 신나게 수다도 떨고, 놀이도 하고, 꼭짓점 춤도 추고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도 길면 지루한 법 이제는 모두들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서 기다렸다. 어떤 중국인들은 공항 측에 격렬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공항이 무슨 죄란 말인가 다 날씨 탓이지. 의자에 앉아 친구들과 기다리는데 한 중국인 아저씨께서 말씀을 걸어오셨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방학마다 배운 나의 중국어를 써먹었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라고 대답하자 아저씨가 뭐라 말씀하셨는데 잘 알아듣지 못해서 그냥 ‘나는 중국어를 잘 못해요’라고 말했더니 아저씨가 ‘너 정말 중국어 잘해’라고 기분 좋은 칭찬을 해주셨다. 이 즐거운 경험을 하고나서도 또 기다려야만 했다. 연착이 길어지자 아까 지나다가 본 공항 서점이 기억나 조장의 허락을 구해 은희와 함께 서점에 갔다. 서점은 온통 중국말로 된 여행에 관한 책이나 소설과 잡지가 비치 돼있었다. 그나마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잡지를 펼쳤다. 잡지 속에는 한국 연예인에 대한 기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냥 신기했다. 뉴스와 기사로 한류에 대한 짐작은 대충 했었지만 눈으로 보니 대단했다. 이때 점원이 나와 은희에게 뭐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짧은 중국어로 ‘우리 보러왔다.’, ‘안산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직원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점에 다녀온 후 지나가다가 마사지의자가 있길래 비행기 타고 온 내내 찌뿌둥한 몸을 풀고 싶었지만 돈을 쓰기는 아까워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있는데 한 한국 아저씨께서 동정을 넣어주시는 친철을 베푸셔서 아주 잠깐 마사지를 받았다. 아주 조금이나마 피로가 풀린 듯했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나서 몇 분이 지나자 드디어 비행기가 뜬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갑자기 웃음을 띤 얼굴로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타러 갔다.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 입구에는 매서운 눈을 가진 공안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비행기가 그러하듯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승무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비행기 안에서는 땅콩이 나왔다. 모두들 기다리는게 피곤했었는지 잠이 들었다. 난 이 중국 땅과 하늘에서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눈을 말똥말똥 뜨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는지 착륙을 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착륙 휴 마찬가지로 모든 수순을 밟고 출구로 나오니 춘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가이드 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의 인도에 의해 공항 밖으로 나왔다. 처음 온 북경의 밤은 까맣고, 탁하고, 소란스럽고, 어딘가 모르게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우리 일행은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중국의 자동차 어느 하나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 무서운 차들을 피해 무사히 길을 건너 버스에 짐을 싣고 탔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가이드 언니가 자신과 기사 아저씨의 소개, 여기까지 오니라고 고생했다는 말, 북경에 대한 설명, 내일 일정 설명, 이틀 동안 묵을 호텔에 대한 설명 등을 해주셨다. 늦은 시간과 피곤한 모습의 우리 때문에 가이드 언니의 배려로 설명을 짧게 끝났다.

우리가 묵을 곳은 별5개가 빛나는 호텔이었다. 방 배정과 방 카드를 나눠 주는데 지선오빠 의 여자 같은 이름으로 인해 여자 방에 배정되는 상황이 벌어져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나와 은희의 방은 12층에 있었다. 방은 생각보다 참 좋았고 깨끗했다. 커튼을 걷어보니 북경의 밤이 눈에 들어왔다. 짐을 풀고 씻은 후 은희와 나는 이런 좋은 호텔은 처음이라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내일을 위해 우리는 이 넓은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의 멋진 여행을 기대하며 잠을 청했다.

2006.5.19

중국이 한국보다 1시간이 늦어 잠을 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빠듯한 여행 일정으로 인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씻고 창밖을 보니 해는 뜬 것 같지만 오염된 공기로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그래도 정신은 맑고 기분은 상쾌했다. 아침을 먹으러 1층에 가니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호텔 직원들이 보였다. 중국은 아침을 밥을 먹지 않고 빵을 주로 먹는다고 했는데 호텔은 여행자들을 배려했는지 뷔페였다. 뷔페는 뭐니뭐니 해도 골라먹을 수 있다는 것과 무한히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음식 냄새가 나고 계란 프라이 맛있는 소리에 아침이 기대가 됐다. 이것저것 가져와서 먹었는데 난 참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수연이는 김치를 애타게 찾았다. 과일도 먹고 쥬스도 마시고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방에 돌아와서 여행할 준비를 하고 버스에 올랐는데 지각해서 벌금을 냈다. 우리가 늦으면 다 늦으니 어쩔 수 없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가이드 언니가 오늘 일정을 설명했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은 명 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한 후 13명의 선조 황제의 능을 이장한 명13능이다. 이능은 명나라의 16명의 황제 가운데 1대 홍무제는 남경에 능이 있고, 2대 건문제는 어디에서 죽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능도 없으며, 7대 경태제는 금산에 능이 있어 3명을 제외한 13명의 황제의 능이 있는 곳이다. 13능의 정문인 대홍문을 들어서면 능 입구인 참도가 있는데, 비석을 풍우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여러 석상을 세워 놓았다. 양쪽으로 갑옷으로 무장한 문관 12개의 석상과 사자, 낙타, 코끼리, 기린, 말 등의 동물 석상이 늘어서 있다. 이 석상들은 단순히 장식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황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참도를 걸어가는 내내 나무도 잘 심어져 있고 큰 석상들을 보자니 어디선가 황제가 살아나 나타날 것 같기도 했다. 참도는 전체 길이가 7km나 되고, 13능 중 개방된 것은 장릉과 정릉 2개뿐이다. 우리가 볼 능은 정릉이었다. 정릉에 들어가기 전에 박물관에 들렸다. 박물관에는 그 시대 사용한 명나라 돈, 그림, 전체 능 모형, 옥새 등이 보기 좋게 잘 전시돼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성곽 같은 곳을 올라 가 보니 1956년에 최초로 발굴한 정릉 지하 궁전의 입구가 보였다. 크고도 넓으면 신비로운 느낌마저도 났다. 지하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에서처럼 검사를 받고 들어가야 했다. 검사가 끝난 후 지하 9층 정7,8층 되는 깊이로 난 계단을 어느덧 내려가 보니 황제의 빨갛게 칠해진 황제와 황후의 관이 놓여 있었다. 관의 겉은 그저 단순히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 이게 황제의 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쓸쓸해 보이고 명나라 쇠퇴를 느끼게 했다. 관외에도 황제의 의자, 도자기 같은 것이 있었다. 정릉의 지하 궁전의 나오는 길에는 아주 큰 묘비가 있었는데 밑에 용을 새긴 것 외에는 별다른 점을 못 느꼈다. 명나라의 쇠퇴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하 궁전을 나와 잘 정돈된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음 일정을 위해 또다시 출발했다.

두 번째 일정은 바로 달에서도 보인다는 세계문화 유산인 만리장성이다. 버스로 만리장성을 행해 가는 동안 가이드 언니는 만리장성에 대한 설명과 얽힌 일화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만리장성의 목적은 북방 민족을 막기 위함이다.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여러 시대에 걸쳐 명대에 들어와서야 완성이 되었다. 청대 이후에는 군사적 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중국 본토와 만주, 몽골 지역을 나누는 정치,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장성의 재료는 돌로 만든 벽돌은 일부이며 나머지는 흙으로 이용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만리장성에 도착해 내리니 어느새 우리가 여행객인줄 알고서 뭔가를 팔려는 사람들 때문에 난처하기도 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보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름옷을 챙겨간 우리는 추위와 비 때문에 비옷을 사서 입고 올라갔다. 성광이 있는 곳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뭔가 허름하고 낡아 보이는 케이블카에 불안했지만 걸어 올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그냥 탔다. 약간 흔들리더니 출발하는데 발밑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를 새하얀 것만 보이고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정말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내려서 본격적으로 아주 일부분이만 만리장성을 오르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가이드 언니의 말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서 게단 하나하나가 다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계단을 하나씩 밝고 올라 가는데 경사가 너무 높아 아찔했다. 그뿐만 아니라 계단이 많아서 가는 내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때문에 구를까봐 무서워 혼났다. 성곽 맨 꼭대기에 이르자 그래도 올랐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말로란 듣고 화면으로만 본 그 만리장성을 내가 오르다니 즐겁고 흐뭇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것 또한 만만치 않아 애 좀 먹었다. 아마 만리장성은 힘들어서 더 기억이 남은 것 같다.

그 다음 세 번째 간 곳은 산의 협곡을 막아 마치 강이나 호수처럼 만든 용경협이다. 중국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바 중국 여행 중에 용경협이 가장 좋았다는 말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갔다. 버스에서 내려 용겹협 입구까지 가기위해 빵빵대는 일명 빵차를 타고서 갔다. 입구를 들어서자 산들이 보이고 빨간 등들이 보였다. 화단은 꽃들로 만발을 이루고 동물의 조각상들이 있었다, 애래도 물이 흐르는 다리 건너 여러 개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 올라가니 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다 배에 탑승하고 나서 배는 바람을 가르며 출발했다. 용겹협은 크기도 하지만 깨끗하고 푸르른 경치가 장관을 이루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것인지 산과 산 사이에 이은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는 아저씨가 마냥 신기해보였다. 우리가 환호를 하자 그 분이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었다. 물이 맑아 보여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스쿠버를 하고 싶었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내려 우린 배고픈 배를 달래주기 위해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은 유명한 북경오리였다. TV화면에서 보았던 그 요리라니 어떤 맛일까 무척 디대가 됐다. 그때 TV에서는 아무나 오리를 못 자르고 숙련된 요리사만이 108 조각으로 자르는 다는 것을 보았다. 식당은 중국식 기와로 된 건물이며 일하는 직원들이 청나라 공주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탁자에 모두들 둘러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북경오리 요리가 나왔다. 종업원이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자 모두들 배가 고팠는지 너나없이 먹기 시작했다. 썰어진 오리를 얇고 둥근 밀가루 병에 올리고 대파 몇 쪽과 첨면장을 발라 돌돌 말아 먹으면 입에서 녹는 맛이 일품이었다. 느끼할 줄 알았는데 에상과 달리 맛있어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그러나 김치는 여전히 빠지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북경 기예쇼를 보러 갔다.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왔고 우린 그들의 공연에 즐겁게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각자의 시간을 갖고 오늘 하루를 생각하면 잠이 들었다.

2006.5.20

아침을 맛있게 먹고 이제 완벽하게 중국에 적응한 몸은 이끌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의 첫 일정은 황제가 오곡풍작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단공원이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중국 사람들은 자주 이 공원을 찾는다고 한다. 입구를 들어서자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이와 그 동작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관광을 하러 온 사람이 많아 공원 안은 북적북적했다. 공원의 넓은 곳들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로 꽉차 있어 가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천단공원은 크기도 무척 클뿐더러 조경이 잘 돼있어 사람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제단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중국인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한국인인걸 아셨는지 비파 같은 악기로 아리랑을 해주셨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서서 할아버지의 훌륭한 연주와 한국의 아리랑을 아신단 것에 감사해 모두들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여러 곳을 지나 도착한 곳은 황제가 오곡풍작을 빌었다는 기념전이었다. 기념전은 천단공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며 북쪽에 자리 잡고 있고 또 삼중처마로 된 원형궁전이다. 이 외에도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3개의 건물이 더 있었다. 바쁜 일정에 서둘러 나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과일이 가득 든 봉지들을 가지고 계시길래 파는 줄 알고 ‘파세요?’ 물어봤더니 ‘안팔아요’하시며 내게 그냥 먹으라고 주셨다. 아주머니가 내미신 건 바나나였다. 천단공원에서의 기억은 이 바나나처럼 맛있고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정말로 매우 유명한 천안문 광장이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천안문 광장가지 가려면 길을 건너 지하도로 건넜다. 지하도는 세상에서 제일 긴 것 같았다. 지하도를 나와 천안문 광장에 딱 서니 내 자신이 정말 작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도 사람이 많지만 중국은 한없이 넓은 이 광장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적어도 2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잠시 멀리 가지 않고 몇m 반경 내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 사람 많은 곳에서 사라지면 큰일 나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셨다. 친구들과 사진 찍은 곳 뒤로는 모택동 기념관과 옆에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곳이 있었다. 입이 떡하고 벌어질 정도로 모든 건물들이 다 컸다. 천안문 광장은 많은 사건들은 품에 안은 역사의 장소였다. 책에서 읽었던 곳이어서 나에게는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여행을 통해 문화와 역사를 두근두근 뛰는 마음으로 느꼈다.

사진을 찍은 후 천안문 광장을 가로 질러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큰 자금성에 우리가 입성했다. 입구부터 자금성에 들어가려는 인파로 붐볐다. 자금성 입구는 화려한 황색기와로 덮인 성벽의 외곽이었다. 입구를 지나자 그 위용을 자랑하듯 흐린 날씨에도 궁전은 당당해보였다. 황제는 아니었지만 황제가 다녔던 가운데 길로 지나가봤다. 갑자기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랄까 즐거웠다. 여기를 둘러봐도 황색기와 저기를 둘러봐도 무수히 많은 건물이 있어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황제나 황후가 지냈던 건물은 안쪽으로 더 들어가야 한단다.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보지 못한 건물도 많았고 9999개의 방에 다 들어가 볼 수도 없고 이 넓은 곳을 다 보려면 하루가 있어도 부족할 듯싶다. 황제가 정사를 봤던 곳 황제의 옥좌..등을 보고 나서 황제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황후를 위해 만든 정원으로 갔다. 자금성 안에 나무와 돌들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이라니 황제가 부인을 참 사랑했나보다. 정원은 아름다웠고 지친 우리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또 다음 일정을 위하여 자금성을 나왔다. 자금성 출구를 나오니 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성 밖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여행하러 왔지만 우린 대학생이기에 중국의 학생들은 어떤 곳에서 공부나 보고 싶어 북경대학에 가기로 했다. 북경대 입구는 공안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키고 서있었다. 우리가 들어가려하자 제지를 하더니 중국말로 뭐라고 하셨다. 나와 수연이와 은희는 공안의 눈을 피해 옆으로 쏙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어떻게 대화가 통해서인지 공안이 들여보내줬다. 들어서자 학교 같다는 느낌보다는 공원 이라는 느낌을 받게 됐는데 조경이 아주 잘 돼있고 학교 건물도 마치 자금성 궁궐 같은 건물들이었다. 아주 일부분만 봐서 다른 부분은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본 일부만도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서태후의 여름궁전인 이화원을 갔다. 펄벅이 쓴 ‘연인 서태후’를 읽어보면 서태후를 역사가 평가하는 나쁜 여인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녀가 권력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잘 나왔다. 물론 작가의 임의대로 쓴 부분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녀는 당당하고 머리가 비상한 멋진 여인이었다. 이화원은 원래 금나라 명, 청에 걸쳐 지어져 그 아름다움으로 서태후를 사로잡았다. 서태후가 아끼고 사랑하는 그 곳이 서구 열강들의 중심인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북경을 침략해 이 여름궁전을 불태웠다.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한 여름궁전이 불타자 서태후는 해군증강용으로 영국에서 차용한 돈까지 횡령해 자신이 직접 설계해 이화원을 지었다. 이화원은 사람의 인력을 동원해 만든 인공호수와 그 인공호수의 흙을 쌍아 올려 만든 산이 있다. 또 세계에서 가장 긴 복도도 있는데 보수 공사라 보지 못했다. 건물들 벽면의 창은 유리와 유리사이에 그림을 그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호수의 크기는 나를 압도할 만큼 컸으며 인력과 군비가 낭비되어 청나라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는 원인이 됐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유명하고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우리는 이화원까지 보고 저녁을 먹고서 공항으로 간 후, 심양공항으로 가기 위해 가이드 춘홍 언니와 아쉽게 헤어졌다. 중국은 국제선은 연착이 없는데 국내선은 중국인들의 여유로움 때문에 연착이 많다고 한다. 공항에서의 기다림이 익숙한 우리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심양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내리니 첫날 심양에서 우릴 인도한 가이드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가이드 언니는 우리 일행을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지은 호텔로 안내했다. 호텔은 그동안 이틀 묵었던 북경의 호텔과는 느낌이 달랐다. 호텔 1층에는 북한 여행사도 있었다. 우리와 동행한 여행사 사장님 말씀으로는 북한 사람들과의 마주침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 방 배정을 받은 후 씻고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어느덧 이 넓은 중국 땅에 적응해 아쉬움이 들었다. 난 은희와 우리가 여행 동안에 뭘 느꼈고 먹고 보았는지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2006.5.21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한 후 오늘은 시간이 넉넉해 여유롭게 준비해 공항으로 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좀 더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무척 아쉬웠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전보다는 밝았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중국의 맑은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큰 건물들, 어디론가 가는 자동차, 자전거, 버스들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에 14억이 움직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심양은 중국의 5대도시 중 하나며 공업도시답게 한국 자동차 회사와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세계 유명 자동차 회사들의 건물들이 보였다. 이 회사들은 지금 공항이나 시안에서 자동차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도로에서는 한국 자동차 회사인 현대를 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도 208년 북경올림픽을 준비로 북경은 여기저기서 공사중이었다. 심양도 마찬가지로 공사를 많이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 몇개 없는 세계 유명 호텔도 많이 들어서 있었다. 이 수많은 인구의 노동력과 넓은 땅과 자본을 가지고서 중국은 지금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국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까지 넘어서는 일은 곧 다가 올 것이고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라 북경을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빈부격차를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공항에 도착했다. 또 심양 가이드 언니와 헤어지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올 때와 같은 비행기여서 눈에 익은 승무원도 보였다. 올 때 비행기 안에서 곽민규 교수님과 옆자리에 앉아 타고 왔다.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비행기 이착륙에 긴장은 되지 않았다. 한국에 거의 이르렀을 때 창밖을 보니 중국 하늘에서 볼 수 없는 청명한 하늘이 반기는 것 같았다. 광주 공항에 도착하니 높은 기온으로 너무 더웠다. 더운 날씨에 피곤한 몸으로 집에 가서 어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서먹했던 사이도 조금은 친해지고 함께 마주보고 웃을 수 있고 무언가를 같이 추억할 수 있다는 사이가 되서 나로서는 기분 좋은 변화였다. 교수님 2분과 여행사 사장님의 말씀을 끝으로 우린 다음을 기약하며 공항에서 해산했다.

처음에는 중국에 대한 무서운 소리도 듣고 해서 겁도 났지만 책에서 읽고, 영화에서 본 그 역사의 현장과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식견을 넓히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 수학과 사람들과 교수님들과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 물론 단체로 가는 여행이라 중국의 일상 생활문화는 접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평생 동안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언어도 다 배우지 못하고, 중국 지방들을 다 돌아볼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많은 민족과 넓은 땅으로 인해 다 해볼 수 없다고 한다. 다는 아니어도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많은 먹고, 배우며, 돌아다녀 보고 싶다. 다음을 기약하며 이번 중국여행을 내 삶의 거름으로 쓰려고 한다. 앞으로 이런 기회를 내 스스로가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모두들 즐거운 여행이었어요...